북한 시장경제를 개척한 젊은 생선 장사꾼들

1990년대 '달리기 장사꾼들', 신생 민간시장의 토대 만들어

Andrei Lankov, 2017년 05월 31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북한의 소상인 백씨(가명)를 소개하고자 한다. 백씨는 10년 전쯤 조국을 떠났지만 2000년대 초 당시 북한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시장 경제의 첫 첨병이었다. 당시 북한의 시장의 발달 수준은 시장경제가 막 태동하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현재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결국 북한의 경제를 1990년대의 나락으로부터 끌어올린 것은 백씨와 같은 수백만 명의 노력이었다.

백씨는 작은 시골 마을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백씨 가족은 가난했으며 정교한 ‘성분’ 체계 속에서 보잘 것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백씨가 이 성분 체계의 최하위 계층은 아니었지만 평균보다 조금 못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대학은 상위 15%이상에 속하는 학생들을 위한 곳이었으며 평균 수준이었던 백씨는 주변 사람들이 본인에게 기대하는 길을 택하여 지역의 반숙련 공장 직종에 취직했다.

공장노동자가 장사꾼이 되기까지

공장이 특권을 누리는 직장이기는 했지만 임금이 낮았기 때문에 백씨는 이십대 초 소규모 가족 사업으로 방향을 돌려 해산물을 팔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 북한에서 상업이 점차 진전되면서 업계 내에는 확실한 분업이 이루어졌다. 고객들에게 상품을 파는 소매상인들이 있었고 지역 도매상인들이 있었으며 속칭 ‘달리기 장사‘를 담당하는 업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 지역의 도매상인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 판매한다. 백씨가 시작한 일 역시 이 달리기 장사꾼 일이었다.

발달한 시장경제에서 상품들은 거의 자동적 경로로 유통되지만 2000년대 초반 북한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백씨는 북동부 해안가의 고향 마을에서 생선 등 해산물들을 구매해 이를 평양과 남부 지역으로 날랐다. 그 곳에서 해산물을 판매한 돈으로 백씨가 다시 쌀과 다른 품목들을 구매하면 고향 마을에서 좋은 값에 되팔 수 있었다.

백씨는 혼자 작업하지 않았다. 백씨의 말대로 팀을 이루어야만 북한에서 ‘달리기 장사’가 가능하다. 백씨는 두세 명으로 구성된 팀의 일원으로서 지방을 오갔다. 귀중품 화물들은 24시간 내내 지켜야 하는데 상인 한 명이 짧게 낮잠을 자거나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화물이 도난 당하거나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단체 행동은 필수적이었다.

백씨는 친척들과 일했으며 그것이 ‘달리기 장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친구들보다는 친척들이 훨씬 믿을 만하다”며 “친구들끼리 함께 일하면 금세 이윤 분배나 책임 등을 두고 말다툼이 일기 쉽지만 친척들끼리는 뭉쳐서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전근대 혹은 반근대적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북한에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운반 화물들은 무거웠다. 백씨와 그녀의 팀(20대나 30대인 두세 명의 여성)은 보통 한 번의 여정 동안 생선 300-400kg을 남쪽으로 운반해야 했고 돌아오는 길에 짐의 무게는 그 두 배에 달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600kg이 넘는 해산물을 운반하기도 했으며 1t에 달하는 쌀 및 다른 남부 지역 식품들을 가지고 돌아가기도 했다. 화물 운송거리는 약 500-600km에 이르렀다.

유일한 화물 운송 방법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2000년 즈음하여 개인 소유의 트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백씨의 고향에서는 지형과 거리 상의 문제로 거의 모든 장거리 운송이 기차로만 가능했다.

‘달리기 장사꾼’들은 불안정한 기차에 의존해 사업을 해야했다 | 사진=Matt Limmer

지역 간 이동

백씨는 거주 지역을 벗어나 이동하려는 북한 주민들에게 요구되는 출입증과 여행 허가증을 발급 받았다. 허가증을 발급받는 일은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작은 뇌물로 일을 부드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후 화물을 실을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2000년대 초까지 여객 열차에는 승객이 가지고 탑승한 물건들을 저장하기 위한 특별 화물칸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화물칸에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백씨의 팀은 때로는 화물을 싣고 내릴 때 어느 역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전문 운송업자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운송업자들을 쓰는 데 돈이 들기 때문에 단 1원이라도 아끼려 했던 백씨와 팀원들은 직접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했다.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는 3-4일부터 8-10일 정도가 걸렸는데 불안정한 전기 공급 상황에 따라 소요 기간이 달랐다. 갑자기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기차는 허허벌판에 몇 시간부터 수 일에 이르기까지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지형과 날씨가 괜찮으면 승객들은 벌판에 내려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물론 팀원 중 누군가가 화물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기차가 터널 안이나 다리 위에 정차하기라도 하는 때에는 불운한 승객들이 붐비는 화물칸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때로는 극성스러운 무더위나 얼음처럼 차가운 날씨를 견뎌야 했다.

대부분의 승객들(백 씨가 추정하기로는 약 80% 정도)은 그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다른 행상인들이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공적 혹은 사적 이유로 길을 떠난 여행객들이었다. 백씨는 이 중 재미를 위해 여정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행은 당시 백씨 주변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개념이었다. 사람들이 여정에 오르는 이유는 통념상 대개 직장이나 사업 목적, 또는 친척을 만나거나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개 열차 환승이 필요했고 작은 역에서 다른 열차를 기다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열차시간표는 완전히 형식에 불과했으며 사람들은 때로 며칠 연속 기차를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가끔 사업가 기질이 있는 지역민들이 숙박시설을 제공했다. 역 근처의 많은 집들이 여행객들의 숙소가 되었다. 여관 주인들은 새로 도착하는 기차가 있을 때마다 역으로 나가 임시 숙소로 숙박객들을 안내했다.

고급스러운 시설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방은 보통 바닥 면적이 허용하는 한 많은 숙박객들을 수용했지만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팀원들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최소한 한 사람은 역 광장 한 구석에 남겨진 화물 근처를 지켰다. 역에서 가장 큰 위협은 노숙 아동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언제든 장사꾼이 눈을 뗀 사이 물건을 훔쳐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면에 강도는 드물었다. 1996-99년 대기근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북한은 놀랍도록 치안이 좋았다.

시골 지역에서조차 강도를 당할 확률은 낮았다 | 사진=Roamme

거래의 미학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자 백씨는 새로 들어온 생선에 관심을 보일 만한 지역 도매상인들 찾아가 판매 협상을 벌였다.

값 지불은 현장에서 현금으로 이루어졌다. 대실패로 끝난 2009년 화폐 개혁 이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대개 북한 화폐를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팔 쌀이나 다른 물건들을 사는 데 또 며칠이 걸렸으며 거래를 마친 후 백씨와 여성 팀원들은 북쪽으로의 긴 귀가길에 올랐다.

일정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대체로 전체 ‘원정 거래’에는 약 3주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여정은 고된 작업이었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수가 좋았기 때문에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 없던 백씨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상대적으로 편안히 모실 수 있었다. 백씨 가족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고 보통 밀반입된 외국 영화들을 볼 때 필요한 DVD 플레이어를 구매하는 등 소소한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백 씨는 20대 후반에 개인적 상황 때문에 고향을 떠났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백씨는 가사 노동자로서 새 삶을 시작해 결국 정착했다.

많은 여성들이 그녀가 했던 달리기 장사를 이어갔고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휴대전화, 더 안정적인 열차 운행, 심지어 일부 개인 송금 서비스 등으로 ‘달리기 장사’는 이전보다 훨씬 덜 고된 일이 되었다. 하지만 북한에 이러한 변화의 토대를 세운 사람들은 생선을 팔기 위해 전국을 가로질러 수주간의 여정에 올랐던 백씨 같은 초기 장사꾼들이었다.

 

 

번역: 정다민 damin.jung@nknews.org

편집: 이희영 hee-young.lee@nknews.org

 

영어 원본 링크 (영어 원본 편집: Oliver Hot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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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사진=PRK, Nepal 537 by jensowagner on 2009-0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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