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소련보다도 가난하고 험난한 북한 주민들의 삶

50년 전 소련보다 검열·여행제한 등도 강력해

Fyodor Tertitskiy, 2017년 03월 02일

이 기사는 북한과 그 모태인 소련의 유사점, 차이점을 분석하는 시리즈 중 두 번째 기사다. 첫 번째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인가?

북한과 소련 사상 체계의 핵심적인 차이는 북한이 사실상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부인한다는 점이다. 소련에서는 아래와 같은 유토피아적인 질서를 ‘공산주의’라고 부르고, 소련 사회의 당시 질서를 ‘사회주의’라고 호칭했다. 그래서 소련의 유일한 정당이 ‘소련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공산주의 질서를 설립하려는 당이라는 뜻이었다.

현재 북한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설립하기는커녕 ‘경애하는 원수님의 탁월한 령도’에 따라 사회주의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개인 숭배

이는 외부에 가장 많이 알려진 북한의 특징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다. 1967년 이후 북한에서 개인 숭배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보다도 훨씬 심하게 진행됐다.

모든 건물에 수령의 초상화가 있어야 하고, 초상화가 있는 벽에 다른 물건을 붙이면 안 된다. 거의 모든 문서에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또는 김정은의 인용을 포함해야 한다. 유치원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어린 시절”과 같은 과목을 배운다. 주민들은 수령과 이름이 같으면 개명부터 해야 한다. 소련에서 이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의 삶이 북한보다 더 윤택했을까? | Photo: CPRF Archives

 

여행의 자유

소련에서 국내 여행 자유도는 높은 편이었다. 예컨대 키예프 거주자가 라트비아 수도인 리가에 가고 싶다면 그냥 표를 사서 갈 수 있었다. 국가에서 어떤 허기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군사 기지나 군사 연구소가 있는 ‘폐쇄 도시’ 등 여행 제한 지역은 쉽게 방문할 수 없었지만, 소련 영토 대부분은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다른 군(郡)에 가는 사람은 ‘여행 증명서’라는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평양이나 라선과 같은 직할시에 가려면 받기가 쉽지 않은 ‘특별 증명서’를 얻어야 한다. 일반 주민보다 평양 사람과 접경 지역 주민들이 갈 수 있는 지역이 많지만, 이들도 허가 없이 전국을 방문할 수 없다.

국제 여행 자유도도 북한보다 소련이 높았다. 소련 주민(특히 당원)은 다른 사회주의권 나라에 관광하러 갈 수 있었다. 인맥이 있다면 자본주의권 나라까지 방문이 가능했다. 북한에서 최고 엘리트와 가장 부유한 돈주를 빼고 관광 목적으로 외국에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구소련 시절 공산당 기관지였던 프라우다조차 가끔씩은 보여줬던 활력 넘치는 보도가 결여돼 있다. | Photo by InSapphoWeTrust

 

정보 접근권과 검열

북한의 검열은 소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구소련 공산단 기관지 ‘프라우다(Правда, ‘진리보’란 뜻)’는 스탈린 시대에도 1967년 이후의 노동신문보다 훨씬 솔직하고 재미있었다. 브레즈네프 시대 ‘프라우다’에는 하급 간부를 비난하고 소련 체제의 단점까지 인정하곤 했는데, 북한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주장은 노동신문에는 나올 수 없는 것이며 북한 주민이 그런 주장을 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소련에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문학 서적을 아무런 문제 없이 살 수 있었다. 북한 문학은 없었지만,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문학 서적을 산 소련 주민은 많았다. 심지어 폴란드어를 배워서 외국 소설의 폴란드어 번역서를 읽기도 했다.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검열이 더 약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주요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자본주의 나라의 공산당 기관지들도 살 수 있었다. 소련에선 영국, 미국, 서독과의 특별 협정에 따라 3가지 해외판 러시아어 잡지가 나왔다. 바로 영국의 ‘안글리야’, 미국의 ‘아메리까’ 그리고 서독의 ‘구텐 탁’이었다. 이 잡지들은 물론 정치적인 내용은 없었고, 서양 문화를 소련 주민들에게 소개했다.

또한, 소련 주민들은 중고 서적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에 신경을 썼지만, 완전히 탄압할 수는 없었다. 북한에서는 1967년 ‘조서 정리 사업’이란 이름으로 옛날 책들을 도서관에서 숙청시켰고, 소련이나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문학들도 심하게 제한했다.

북한에도 과학기술 도서가 있고, 고전 문학도 나오며, 가끔 현대 문학도 발표된다. 예를 들어,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일본 소설을 좋아하면, 이 소설은 소개하는 것은 허락됐다. 이 외에는 북한에서 어떤 문학 작품도 나오지 않는다.

소련에선 공식 매체까지도 스타일의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1960년대 모든 주민들은 비교적 자유적인 ‘노뷔이 미르(Новый мир, 신세상)’와 스탈린주의적인 ‘옥탸브리(Октябрь,’10월’)’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모든 매체가 한결 같이 체제를 지지해야 한다.

물론, 이 때문에 문학에서는 소련과 경쟁할 수 없었다. 소련에서는 전 세계에 알려진 영화나 소설이 나왔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일 시대에만 진짜 그림과 좋은 음악이 나왔을 뿐이다. 북한에서 조금이라도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영화는 드물고, 북한 소설이라는 것은 ‘쓰레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2017년인 지금까지도 북한은 경범죄를 저지를 사람조차 수용소로 보내고 있다. | Photo by Konrad Lembcke

 

감옥과 노역 수용소

독자들은 북한의 감옥과 관련해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기대하겠지만, 필자는 북한의 장점으로 볼 수도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스탈린식 ‘임의 탄압’은 북한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즉,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잡아서 수용소에 보내 사형시키는 것은 1930년대 말 소련에선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북한에선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범죄에 관한 규칙은 참으로 끔찍하다. 북한 형법에 따라, 외국 방송을 청취하는 것만으로도 2년 이하의 ‘노동 단련대’ 수용 형이 내려진다. 5번 이상 청취 시에는 수용소에서 5년을 살아야 한다.

고의가 아니어도 ‘수령님’의 초상화를 떨어뜨리면 사형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북한엔 사형 제도가 존재하고 사형 집행도 이뤄진다. 소련은 1947~1950년까지 사형 제도가 없었던 짧은 시기가 있었다.

일반적인 비정치적 범죄라면, 김일성 시대의 북한이 꽤나 안전한 나라였다. 국가는 반체제 활동을 탄압한 것처럼 범죄 활동도 탄압했다. 1990년대 대기근 이후에도 북한의 범죄율은 생각보다 낮았다. 깡패나 살인자가 될 수 있었던 자들도 공포의 시대를 잘 기억해서 범죄 활동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 수용소 제도의 설립자인 방학세가 소련 비밀경찰 출신의 고려인이었지만, 제도는 소련과 차이가 많다.

스탈린 정권은 정치범과 일반 범죄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북한에선 이런 분리가 존재하고, 역시 소련과 비슷한 수용소는 일반 범죄자들을 위한 ‘교화소’다. 정치범들을 위한 ‘관리소’의 원형은 유형지(流刑地)이고 현재 관리소는 지구 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곳 중 하나이다.

국가에서 승인한 북한의 가톨릭 성당 모습. | Photo by uritours

 

종교와 국가

소련은 무신론 국가였다. 그런데, 시대마다 종교에 대한 탄압 수준이 달랐다. 소련이라는 나라를 ‘세계 혁명을 이루야 할 노동 계급의 나라’로 볼 때면 종교인은 살기가 어려워졌고, 반대로 ‘좋은 전통이 있고 러시아의 역사를 계승한 나라’로 보면 탄압은 약해졌다.

북한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북한 당국은 세계 혁명을 이루겠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른바 ‘주체 사상’이 ‘인간 중심 세계관’이라는 주장 외에는 아무 내용이 없어서 인기를 받지 못했다. 소련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북한의 영토 확장 계획은 ‘남조선’ 합병뿐이었다. 북한은 소련보다 더 전통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인에 대한 정책은 북한이 훨씬 강압적이었다.

북한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같은 상징적인 조직을 설립했지만, 이들은 아무 실권이 없고 선전 목적으로만 존재했다. 실제로 종교인이라면 북한 당국의 정책은 매우 단순했다.

이 남자가 불교 신자인가? 수용소에 보내라. 이 여자는 기독교인인가? 수용소에 보내라. 이 사람이 감히 성경을 공민에게 줬다고? 선교사를 즉시 총살하라!

기독교는 로마 제국 시대부터 국가적인 탄압 아래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걸 보여줬다. 북한에서도 지하 기독교가 있고, 이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들만의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가짜 거울로 들여다 보기

소련인과 북한인이 서로를 어떻게 봤는지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소련 사람에게 북한은 소련의 패러디처럼 보였다. ‘조선’과 같은 잡지를 보고 선전을 조롱하면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북한이 코미디언이 상상한 나라가 아니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북한 주민들은 소련을, 소련 주민이 폴란드를 보듯, 봤다. 즉, 자신들처럼 사회주의 국가지만, 자신들보다 더 잘 살았고, 자유로웠고, 재미있고 그리고 좋은 곳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은 언제나 북한에서 인기가 많았다. 러시아는 이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이 옛사랑의 일부나마 북한 주민들로부터 받고 있다.

 

번역: Fyodor Tertitskiy

영어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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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사진: 1980년대 소련 by payal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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