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체포된 외국인에게 생기는 일

전 미국인 북한 억류자, 감금생활 자세히 공개

Justin Rohrlich, 2017년 01월 12일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출신의 대학생 오토 프레드릭 웜비어(21)가 지난해 1월 평양의 어느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쳤다는 혐의로 억류된 지 8개월 가까이 흘렀다. (이 기사는 2016년 7월 27일에 작성된 기사다. 오토 프레드릭 웜비어는 여전히 북한에 억류돼 있다.)

프로 스포츠 에이전트이자 사회 운동가인 데이빗 슈거만은 웜비어를 석방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2012년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종교적 쿠데타’ 음모를 꾸민 혐의로 2012년 구속된 미국인 선교사 케네스 배가 억류되었을 때 #배씨를구해오자(#BringBaeBack) 캠페인을 벌여 배 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슈거만은 “무슨 이유에선지 하나님은 내게 수감자를 구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나는 그것이 내 천직이자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지난해 4월 신시내티 공영 라디오에서 말했다.

제프리 폴리 사건의 경우, 그를 감옥으로 데려가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됐다. 오하이오 주 미아미스버그 출신의 56세 도로 정비공이었던 제프리 폴리는 2014년 청진 항구도시에 있는 선원 클럽의 화장실 쓰레기통 밑에 성경책을 두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북한의 수도에서 6개월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폴리는 NK뉴스에 그의 수감생활 동안 겪었던 시련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현재 웜비어가 겪고 있을 법한 일들을 알려주었다.

폴리의 문제도 웜비어처럼 어리석은 생각과 엉성한 행동 때문에 시작됐다. 그는 자기 이름,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한영 성경책 표지 안쪽에 적어두었다. 그는 “일부러 지역 번호를 생략”했는데, “혹시나 성경책을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개인 신상 정보를 적어둔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부인할” 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폴리는 매주 일요일 교회 두곳에서 봉사를 해왔다. 그는 실수로 성경책 속에 가족사진을 남겨두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이 발견되자, 누가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거의 확인되었다. 처음에 그는 성경책이 실수로 그의 가죽 재킷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이라는 계략을 계속 써 보려 했다. 그러나, 이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큰 성경책이 작은 주머니에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폴리는 결국 모든 내용을 자백했다.

폴리는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 사람들과의 문제가 원만하게 수습되는 듯했고, 다음 날 아침 평양을 떠날 계획이었다.

폴리 씨가 체포된 청진 선원클럽의 어느 바(bar)|사진=NK뉴스

 

다음 날, 폴리 일행이 중국행 비행기를 탑승하는 도중 두 명의 북한 안보 요원이 그에게 접근해 터미널 밖에서 대기하던 검은색 폭스바겐 파사트 차 안으로 그를 떠밀었다. 그들은 폴리의 양쪽에 앉았다. 통역자 폴리는 조 씨라고 부리는 사람이 운전자 옆 앞 좌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폴리는 그들 중 누구와도 눈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양각도 호텔의 지하 차고에 차를 세웠다. 폴리는 36층 205호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그의 6개월 억류생활 중 첫 3개월 반을 보내게 되었다.

앞쪽의 방에는 테이블 한 개와 의자 네 개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폴리에 대한 심문 또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터뷰’가 하루 두 세 번씩 진행된 곳이다. 방 안에 온종일 경호원이 상주했고, 폴리는 동행인 없이 옆 방으로 나갈 수 없었다.

미국과 북한의 외교적 관계가 단절돼 있으므로, 스웨덴이 북한 내 미국인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했다. 미국 국무부는 폴리 씨의 러시아인 아내에게 그의 억류 사실에 대해 아무와도 자세히 논의하지 말고, 언론과의 접촉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폴리는 “국무부는 아내에게 ‘우리는 막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폴리를 감시하는 열 명 가량의 사람 중 세 명이 그를 심문했다. 키 큰 김 씨, 키 작은 김 씨, 그리고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부한 ’56 씨’가 그들이었다.

폴리 씨는 “56 씨가 다른 외국인 억류자들과 일한 적이 있다고 내게 말했다”고 했다. “2010년 체포된 중국에서 북한으로 걸어들어온 선교사 아이잘론 곰즈와 2009년 수감된 유나 리, 리사 링 기자 두 명이다. 그는 내 기억 속의 56 씨였다. 그가 내게 말한 바가 맞는다면 나와 동갑으로 56세다.”

조 씨를 통해, 두 명의 김 씨와 56 씨는 폴리의 진정한 동기를 중점적으로 알아내고자 했다. 왜 청진인가? 그들은 계속해서 물었다. 북한 내의 지하세계 기독교인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가? 정확히 누구와 연락을 하려 했던 것인가? 그를 청진으로 보낸 기관의 이름이 무엇인가?

폴리는 그가 아무런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원래 계획은 외진 항구 마을의 화장실보다 더 공공장소에 성경을 두고 오는 것이었으나, “일행이 곧 북한을 떠나려 했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청진에서 실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첫날 밤, 폴리는 TV를 시청하며 그가 처한 곤경에 대해 잊으려 애썼다. 북한 국영 채널 외에도 NHK, BBC 그리고 다양한 중국 채널들이 나와 만족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정비공이 방에 들어와 필터를 설치해, 폴리 씨는 오로지 북한 선전 채널 3종류만 시청하도록 제한되었다.

폴리는 펜과 종이를 받아 “적고, 적고, 또 적도록” 강요받았다. 그는 “내가 했던 일은 적는 것뿐이다”고 말한다. 그의 고백은 몇 번을 다시 적어내도 그의 심문자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끌지 못했다. 그의 심문은 끝없이 반복되었고, 두 김 씨와 56 씨는 폴리가 말한 내용에서 세부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어 그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폴리가 유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꾸미고는 했다.

약간의 옷, 칫솔, 빗 이외의 모든 것이 압수되었고 압수된 물품들은 경호원들에 의해 매우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다. 폴리는 어떤 관광객이 조 씨에게 주고 간 스위스 군대 칼을 이용하여 손톱을 깎았고, 면도할 때는 또한 관광객에게 받았다는 조 씨의 전자 면도기를 이용했다.

폴리는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는 주로 정부가 운영하는 조선 국제여행사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는데, 임시로 이 일에 관여하는 중이라고 내게 말했다”고 말한다. 이어 “그들은 여행사 일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그들의 주요 업무를 늦추고 있는 모양이었다”고 덧붙였다.

폴리는 초기에 양각도 호텔에 억류되었다|사진=NK뉴스

 

폴리는 양각도에서 하루 세끼 “일반인 관광객이 먹을 만한” 한식을 받았다. 요청에 따라 양식도 받을 수 있었으나,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또한, 세탁물을 맏기는 데도 추가 요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심문 중 입어야 했던 양복을 빨래하고 널어서 건조했다.

6월 말, 폴리는 갑작스럽게 보통강 호텔로 이동해 북한 사람들이 제3자라고만 설명한 누군가와 미팅을 했다. 그 사람은 칼 올로프 앤더슨 스웨덴 대사였고, 폴리의 아내 타티아나와 그의 세 아이로부터의 편지를 포함한 모든 생필품 꾸러미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집에 전화 한 통 할 수 없었던 폴리는 “타냐(타티아나)가 최소한 기본적인 상황을 알고 있으며 내 가족이 슬픔에 잠겨있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다”고 말했다. “스웨덴 사탕 종류인 밀카 바도 들어 있었다. 내가 초콜릿 팬이라고 아내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사가 나에게 그 물품들을 전하자, 조 씨가 먼저 잡아채 며칠 뒤에야 내게 돌려주었다.”

꾸러미에는 고려 여행사 직원이 보낸 영국판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집도 들어 있었다. 이후 조 씨가 그 책을 폴리 씨 가족이 보낸 것이 아니냐고 재차 묻자, 폴리는 책 뒷면에 가격표가 미국 달러화가 아닌 영국 파운드 스털링 화로 되어 있는 것을 지적하며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리는 “조 씨가 ‘우리가 검토해 봐야겠다’고 말한 이후, 나는 그 책을 다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출처가 스웨덴 대사관인지 어딘지에 서 들은 내용과 약간 달랐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30분 동안 통화하는 비용은 현금으로 140달러(한화 약 17만 원)였다. 그는 700달러(한화 약 87만 원)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당시로는, 그들이 나를 북경 어딘가에 버려두어 내가 스스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를 대비해 돈을 비축해야 했다”고 설명하며 더는 전화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양각도에 도착한 지 14주가 지났을 때, 폴리는 짐을 챙겨 이동 준비를 하도록 지시받았다. 그의 일부 소지품들이 감수된 후, 폴리는 언론에서 게스트하우스라고 묘사하지만 “스위트룸이 있고 사업 시설에 가까운”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외부에서 하루 23시간 잠겨진 작은 방에 갇혀 나머지 억류 기간을 보내게 되었다. 방 안의 유일한 창문은 “플라스틱 필름으로 뿌옇게 덮여” 폴리를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

 

밀러 씨가 법정에 나타나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구금소에 갇혀 지낸 초기 며칠간 폴리는 “누가 구두로 공격을 당하는 듯한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직원들에 대한 정신 훈련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소리가 지난 4월 평양 국제공항에 도착해 비자를 찢은 혐의로 구속된 21세 미국인 매튜 밀러였다고 생각한다.

경호원들이 폴리와 밀러를 떼어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최소한 한 번은 밀러로 추정되는 사람의 흔적을 봤다고 했다.

폴리는 “누군가가 책상 서랍 안쪽에 영어로 ‘남학생 아님’을 긁어 적어놓았다”고 말한다. “내 심문자 중 한 명이 사용하는 어구가 생각났다. 내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어린 학생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심문실의 창문들에는 서리가 끼지 않았고, 폴리는 외부 세계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의 제수가 신문에서 오린 일주일 치 십자말풀이와 스도쿠 퍼즐을 보내주었는데, 경호원들이 그것들을 보고 겁을 먹었다. 그 뒤로 폴리 씨는 더는 퍼즐을 받지 못했고, 폴리 씨가 제수에게 퍼즐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한 편지들도 전달되지 않았다.

폴리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북한이 국무부에 내 가족들이 퍼즐을 더 보내지 못하도록 요청했다고 한다”고 말하며 “그들은 퍼즐이 무슨 암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폴리는 북한에 갈 때까지만 해도 사용하던 야후 이메일 주소를 더는 사용하지 않는데, 북한사람들이 심문 중 그의 개인정보를 알아냈고 폴리는 그들이 아직 그의 계정을 감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 김 씨와 56씨는 폴리에게 그가 곧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폴리가 유죄 판정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그다음 가게 될 장소는 감옥이라는 것도 말해주었다. 폴리는 그들을 믿었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10월 말 즈음, 폴리의 방 문간에 조 씨와 키 작은 김 씨가 찾아와 그에게 다시 짐을 챙기라고 말했다.

폴리는 “그들은 내가 6개월간 보지 못한 여행 가방을 가져왔고, 내게 계속 ‘서둘러라. 빨리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키 작은 김 씨는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나는 이제 감옥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혼이 났다.”

CNN과 인터뷰하는 폴리. |CNN Screengrab

 

그의 짐들이 북한 재고 목록과 대조하여 검수된 후 폴리는 전에 앤더슨 대사와 만났던 보통강 호텔로 이송되었다. 한 달 전 같은 호텔에서 CNN 그리고 AP 뉴스와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폴리는 카메라를 들고 서성거리는 북한인들이 북한 내 언론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무리에서 한 명의 서양인을 목격했고 아마 유럽 언론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폴리는 “정장 차림의 북한 남자가 내게 갑자기 다가오더니 ‘당 최고위원장이자 원수인 김정은 동지가 당신을 석방하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바로 직후, 서양인 외모의 남자와 한국계 미국인이 다가와 ‘우리는 국방부에서 왔다. 당신은 집으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몇 톤의 벽돌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형선고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

폴리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명의 북한인이 그들 세 명을 구식 메르세데스 세단에 태우고 평양 공항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대기하고 있던 국방부 737호 바로 앞에 섰다. 비행기는 북한이 정한 일정에 맞춰 도착해 있었다.

탑승을 마치자마자 비행기는 대한민국 영공을 완전히 피해가며 동해를 지나 괌의 앤더슨 공군 기지까지 남쪽으로 날아갔다. 비행 중에 심한 난기류를 만났고, 폴리는 국방부 직원이 착륙 후 들것에 실려 내려야 했다고 전했다. 앤더슨 기지에서 폴리와 그를 수행하는 국방부 직원 20여 명을 포함한 일행은 같은 737호로 갈아타 하와이 진주만의 히캄 기지까지 일곱 시간을 비행했다. 그곳에서 비행기의 연료를 충전한 후, 폴리 일행은 드디어 오하이오 주까지 날아갔다.

폴리는 “태평양을 건너는 중 나는 타냐와 통화를 할 수 있었고, 학교에 있는 내 아이들을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매스컴에서 얼마나 큰 화제인지 몰랐다.”

8시간 후, 폴리가 탄 비행기는 오하이오 주 데이턴 부근의 라이트 패터슨 공군 기지에 도달했다.

 

국방부 737호 옆에서 가족과 만나는 폴리 씨|사진=Newsy

 

폴리는 “내 아내, 아이들, 장모님 그리고 몇 명의 군인들이 내가 내린 계단 바로 밑에 서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나는 엎드려 아스팔트 도로에 입을 맞추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전에 이미 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토니 홀 전 오하이오 상원의원(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이후 유엔 식량 농업 기구의 미국 대사로 근무)이 폴리의 억류 기간 동안 뉴욕에 있는 유엔 북한대표부와 몇 차례 만났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가 왜 풀려났는지에 대한 세부 내용은 들은 바가 없다. 국무부 대변인은 스웨덴 정부가 담당한 폴리의 석방 사건을 보안법에 따라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작년 1월, 존 카시크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오토 웜비어를 석방하기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카시크 주지사는 “북한은 미국 시민을 체포해 감금시키는 관행을 만들었다”며 “북한은 이러한 체포를 통해 끊어진 외교적 관계를 억지로 재개하거나 단순히 미국을 적대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왔다”고 썼다.

정치적 영향도 물론 좌우하지만, 폴리와 웜비어 사건에 연루되었던 북한 관광산업 내부자에 의하면 북한에서 체포되는 일은 사실 꽤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상황이 민감한 만큼 익명 제보를 요구하며 “제프 폴리가 화장실에 성경책을 놔두는 일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을 리 없고, 오토 웜비어가 호텔 벽의 선전 문구를 훔치는 것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상하거나 모호한 법도 아니고,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법 내용이다. 잘못하지 않는다면 북한 관광객이 임의로 억류될 위험은 전혀 없다.”

 

영어 원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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