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이란 핵 개발: 오도된 유추인가?

오랜 동맹인 북한과 이란 간 유사성 있으나 북핵문제 타결 점치긴 일러

Maria Coduti, 2017년 08월 18일

 “이런 국가들(북한, 이란, 이라크)과 그들의 테러리스트 동맹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려 무장한 악의 축이다”

이 말은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새 안보전략을 설명하며 그 원칙의 핵심을 요약한 말이다.

이러한 틀에서 핵 확산과 이른바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의 위협은 미국 대외정책의 방향전환을 정당화 하는 사유가 되었다.

핵 보유 열망에 타오르고 있는, 저지되지 못하고 무분별한 정권들이 가하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억지보다는) 선제조치, (비확산보다는) 핵 확산에 대한 반대, (외교적 선택지보다는) 군사적 방식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2002년 미 국방부가 발표한 핵 태세 검토보고(NPR, Nuclear Posture Review)는 북한과 이란을 미국 핵무기의 잠재적 공격대상에 올렸다.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이란 방문 | 사진=조선중앙통신

 

새로운 질서

9.11 공격 이후 야기된 공포와 담론들로 인해 부시 정부는 “국제정치와 국제사회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필요성”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정책을 추인한 배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량국가들’이 실제로 대량살상무기(WMD)로 미국을 공격할 역량이 되는지 여부나 그들의 실제 행위가 아니라 WMD로 무장했거나 무장했다고 전제되는 정권들의 성격이었다.

미국이 (불량국가들의) 정권교체를 강조하고 이를 전략으로 채택하면서부터 북한과 이란의 위협이라는 인식이 악화되었고 동아시아와 중동에서 공히 전년도까지 지속되었던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과 협력 정책은 종식되었다.

1990년대 말 클린턴 정부에서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당시 서방이나 미국과 대화를 하려했던 온건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페리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북한에서 2차 북핵위기가 발발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는 동시에 북미제네바 합의를 깨면서 화해의 희망은 사라졌다. 이로 인해 북한은 결국 핵무기 개발을 용인받은 셈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해외 망명 중인 이란 반정부 단체가 이란에 비밀 핵 시설이 두 군데 있다고 폭로함으로써 이란이 1년 안에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모든 설비를 건설했다거나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3년 3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의 핵 개발 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이란에서 새로 구성된 의회가 핵 농축을 지속하겠다고 천명하는 강경파들로 채워졌다. 1년 뒤에는 신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핵 문제를 정치적 구상의 한 축으로 삼았다.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으로 이란 핵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사진= Hossein Zohrevand

 

이중 전략

북한 김씨 정권 및 신정과 같은 이란 정권을 향한 미국 정부의 강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이중 전략’도 시도되었다.

2003년 동아시아에서 열린 6자회담, 이란과 유럽연합(EU) 3국(영국, 프랑스, 독일) 회담, 2005년 이란과 P5+1회담(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 EU 공동안보정책 고위대표와 이란의 협상 등이 대화의 예였다. 그 결과 북한과는 2005년9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이란과는 2003년에 테헤란 선언, 2004년 파리합의가 도출되었다.

2006년에 접어들면서 유엔 안보리는 북한과 이란의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 계획을 저지하고자 제재 결의안을 몇 건 통과시켰다.

그러나 북한과 이란 양측 모두에서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다. 다만 6자회담은 핵 시설 검증 문제로 2008년 교착상태에 빠졌고 미국은 북한이 몇 가지 선결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란과의 대화의 물꼬는 끊기지 않았다.

2010년부터 미국과 EU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으며 이란의 에너지 부문에 충격을 주고 이란을 국제금융 시스템에서 고립시키는 독자적인 조치들도 병행했다.

이란에서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선출되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비현실적인 우라늄 농축 전면 금지를 포기한 후에는 협상이 더 순조롭게 흘러갔다.

2015년 7월14일 P5+1과 이란은 이란의 우라늄 비축량과 농축에 제한을 두고 핵폭탄을 제조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조인하여 오래 끌어온 핵 난국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5년 7월 조인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이란과 서방의 핵 교착상태를 풀었다.| 사진=Dragan Tatic

 

이란은 또한 IAEA의 강화된 조사를 용인하기로 했다. 그 결과 이란은 협상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핵 연구와 개발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이란이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댓가로 유엔 안보리와 EU, 미국이 핵과 관련하여 이란에 부과한 겹겹의 제재도 풀렸다.

합의안에는이란의 속임수가 발각될 경우 제재가 복귀된다는 ‘원상회복’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현재 이란 핵 개발과 관련하여 부과되었던 모든 제재가 해제되었다.

 

이란에서 북한으로?

JCPOA 조인 후 이란의 전례를 통해 북한 정권도 핵 야심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란이 타협에 나서는 데 제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제재조치가 효과적이라는 점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소 피상적인 평가다. 북한과 이란은 정치체제, 국내 역학관계, 핵 개발 추진 동기, 기술 진전 단계 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 보유국이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김정은 정권이 “핵 개발은 협상용 장난이 아니며 미국의 핵 위협과 적대적 정책으로부터 주권과 불가결한 권리를 지키려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자문역들이 북한과 관련하여 이러한 기본적 사항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핵화 노력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김정은은 병진정책 하에 핵 개발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이란 정권은 이러한 정책을 내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혜택과 핵 개발을 맞바꿀 수 있었다.

이란은 안보상 고려와 역내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지 때문에 즉, 자국의 국방 수준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핵 개발을 진행했다.

 

북한은 이란과 같은 제도적 유연성이 없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KCNA

 

정치적 고려

이란 체제가 북한과 다른 점은 국내 정치 분파의 역학(이란의 현 정세는 주요 정치인들과 권력기구 간의 변동하는 연합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과 체제 유지를 궁극의 목표로 하는 최고지도자의 특유한 역할에 있다.

따라서 이란에서는 국내 지도층 전반이 사안에 대하여 합의를 이루면 협상 타결이 가능하다.

이란의 분파 중 전통적 보수주의자(강경 보수파와 구분된다)들은 개혁파인 로하니 대통령의 핵 외교를 지지했으며 군부인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정치주체들은 핵 합의에 반대하는 댓가가 매우 크고 합의를 중단하는 것은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얽히고 분산된 권력 구조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국내 여론이나 민심의 압력은 대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 교수와 마커스 놀랜드 미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지적대로 김정은 정권의 억압적 특성과 인민들에게 희생을 전가하는 양상으로 인하여 제재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런 차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제재가 효과를 거둔 반면 당과 군대, 정보기구를 주축으로 한 북한 지도부에는 제재가 별 타격을 가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대이란 제재는 엄격하게 이행되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강제할 수 없었다.

 

무기개발 형제국

이란과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의 핵비확산 정책의 중심에 있었다. 2010년 미국 외교 기밀문서들이 폭로되면서 미국 관리들은 이란이 북한으로부터 탄도미사일 부품을 공급받았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제사회는 2002년부터 이란의 샤하브-3 미사일과 북한의 노동미사일이 쏙 닮아 있는 등 북한과 이란이 미사일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란 미사일 전문가들이 북-중 국경지대의 북한 미사일 시설에 머물고 있다는 등 양 국 간 미사일과 핵 개발 협조에 관한 미확인 보도도 많았다.

북한과 이란은 미사일 개발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샤하브-3미사일, Aria Mehr, Flickr Creative Commons

 

이란과 북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1980년대 고립상태에 있던 이란이 이란-이라크 전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대항하기 위해 군수품을 평양에서 공급받던 때부터 양 국이 오랫동안 협조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당시 김일성은 그 댓가로 부족한 외화를 획득했다.

1985년에는 양국이 미사일개발계획공동협력안을 출범시켰고 1990년대에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은 북한의 무기를 본 뜬 경우가 많았다.

이란은 핵 개발 과정에서도 북한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북한은 이란 핵 시설이 선제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강화하는 작업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북한 핵 전문가 수백명이 이란에 파견되어 일했으며 북한의 핵 관련 주요 소프트웨어가 이란에 제공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2년 9월 테헤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회의의 부대행사에서 양 국은 과학협력협정에 서명했다.

양 국의 관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과 이슬람공화국통신(IRNA)는 이 협정이 과학, 기술, 교육에서 협력을 포괄한다고 보도했다. 서구 언론들은 이란 대표단을 북한에 영구 배치한다는 내용의 2쪽짜리 문서를 양국이 서로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테헤란에 8월 초 개관한 새 북한대사관 | 사진=조선중앙통신

 

협정에 조인 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양국에 ‘공동의 적’이 있다고 선언했다. 2014-2016년 사이에는 이란이 P5+1과 JCPOA 관련 마지막 단계 협상 과정에 있으면서 북한과 이란의 협력은 약화되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목표로 하면서 이란을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집중했다.

2015년 이란의 핵 협상 타결 후에도 북한과 이란은 협력하면서 특히 탄도미사일 개발에서는 기술 공조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정략결혼으로 묘사되는 양 국 간 협력은 단순한 거래라기 보다는 상호교환에 가깝다.

최근 몇 달 간 북한이 시험발사한 미사일들과 이란 기술의 유사성은 이란이 북한 미사일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란은 미사일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할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다. 이란 탄도미사일 성능을 개선하여 해상 전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높이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 함대를 위협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하려는 목표가 있다.

이란이 사거리 2500마일(약 4천km)의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미국에 대한 위협이 크게 증가한다.

이란이 중동 지역 힘의 균형을 재구성 하고자 하는 오랜 목표와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최악의 협상’이라고 최근 비난한 JCPOA가 처한 불확실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란의 미사일 개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번역:이희영 hee-young.lee@nknews.org

 

영어 원본 링크 (영어 원본 편집: Oliver Hot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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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by Örlygur Hnefill on 2007-09-29 0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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