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구소련, 얼마나 비슷할까?

소련은 북한에 비하면 자유주의의 수호자였다

Fyodor Tertitskiy, 2017년 02월 01일

이 기사는 북한과 그 모태인 소련의 유사점, 차이점을 분석하는 시리즈 중 첫 번째 기사다.

 

북한에 관한 가장 흔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북한이 근본적으로 소련의 작은 복제국이라는 것이다.

물론 두 국가 사이의 유사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아이가 부모를 닮지 않는 것 만큼이나북한은 그 조상국가 소련과 차이가 있다.

일단 소련과 북한 양국은 역사의 맥락 속에서 중대한 변화를 거쳐 왔으므로, ‘소비에트 연방 전반’ 또는 ‘북한 전반’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세부적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신(新) 경제정책 시대, 스탈린 시대, 흐루쇼프의 해빙기, 침체기(1964~1985)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다.

북한의 역사 또한 몇 단계로 세분된다. 첫 번째는 ‘소비에트’ 시기(1945~1957)다. 이 기간의 초반에 북한은 소비에트 연방의 지휘 아래 있었고, 러시아의 대표단들이 김일성 주석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김일성과 양측의 공산군 장교들 (1945년).|사진=위키피디아 커먼스

 

이후 과도기(1957~1967)에 김일성 주석이 국가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북한은 러시아 대신 중국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지속하는 마지막 단계는 김씨 가문에서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뻔뻔하게 지도자를 숭배하고 있는 시기다(지금까지 다룬 내용은 정치사인데, 경제사적으로 북한은 1990년대에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경제다

김일성 시대 북한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공동 분배 시스템이었다. 개인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대신, 나라가 할당량에 따라 주민들에게 배급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대다수 나라처럼 이 시스템을 극심한 대기근의 시대에 아사를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소련 국민은 공동분배 시스템을 경제가 붕괴하기 직전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북한은 이와 거의 반대였다. 공동 분배 시스템은 1950년대 후반 시작된 이후로 긴급 대책이 아닌 일반적 규범으로 인식됐다. 1990년대 중후반 공동 분배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함과 동시에 대기근이 닥쳤기 때문에 북한은 공동 분배 시스템의 폐지를 경제가 붕괴하기 직전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됐다.

북한 주민에 비하면 소비에트 시민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다.|사진=(stephan)

 

두 번째 차이점은 북한의 경제가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현재까지도 러시아, 중국 등 외국의 원조를 일정 정도 이상 받아야 한다.

셋째, 이제 북한에서는 시장의 역할이 소비에트 연방의 어느 시기보다도 커졌다. 거의 모든 재화를 사고팔 수 있으며, 대부분의 북한 주민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점과 연관돼 있다. 다시 말해, 김일성 시대 경제의 준사법적 영역은 구소련 연방보다 훨씬 작았으나,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 실로 엄청나졌다.

네 번째, 소비에트 연방은 훨씬 더 부유했다. 브레즈네프 집권기의 시골 사람들조차 평양시의 중간계층 거주민보다 부유했을 것이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해도 북한의 수도에는 여전히 전기 공급이 부족하다. 공산주의 아래서 사람들이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도시 모스크바는 북한 사람들로서는 미처 생각할 수 없는 부자들의 천국이었다.

 

지속적인 통제

‘공산당 체제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사회주의 모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북한보다 더 성실히 따라야 할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어린이와 수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 기관에 소속돼 있다. 조선 소년총연맹,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조선노동당, 조선 민주 여성동맹 등 여러 기관이 있다. 각 기관은 주기적으로(주 2~3회) 사상 교육 시간을 마련해 회원들이 지도자의 위대함과 비평 및 자아비판 방법에 대해 배우도록 한다.

구 소비에트 연방에는 북한의 ‘인민반’ 같은 주민 생활 조직이 없었다. 이 최말단 행정 협조 시스템은 일본 식민지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식민지 시기에 이들은 ‘애국반’으로 활동했다. 국영 기관이 학교 또는 직장에서 사람을 통제한다면 이 주민 조합들은 집에서 통제한다.

북한주민들은 사생활까지 통제된다. 스탈린에게는 꿈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사진=Roman Harak

 

때로는 이들 조직이 깜짝 조사를 하기도 한다. 의장과 순찰대가 인민반에 소속된 가구들의 아파트를 검사한다. 아파트 건물에 외부인이 있으면 곤란하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사택은 거의 통제되지 않았다. 어떤 반체제 인사들은 “소비에트 정권의 권한 내 아파트 현관에서 끝난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북한은 소련과 달리 개인의 출신을 매우 진지하게 취급한다. 고(故) 스탈린 집권기에도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았으나, 북한에서는 성분과 계층이 개인의 출신을 나타내고 사회 내 개인의 지위를 규정한다.

 

정당 정치

소련은 북한과 달리 대중의 정치적 활동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모든 어린이는 ‘작은 10월당’에 가입한 후 ‘공산주의 소년단’에 가입해야 했는데, 예를 들어 신부의 딸은 여기서 제외될 수 있었다. 구소련의 모든 젊은 남성과 여성은 레닌주의 청년 공산주의 동맹에 의무적으로 가입했으나, 폭력배는 비서실에서 지원을 거절당할 수도 있었다.

모든 선거에는 단 한 명의 사전 승인된 후보가 있었는데, 당의 후보자가 아닌 사람에게 투표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총선에서는 당 중앙 위원회 정치국이 투표 시행 전 공식 결과를 승인했으므로 상관이 없었기 때문인데, 당내 기관 등 그 하위 단계에선 상관의 제안을 거슬러 투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은 출마 또는 공천된 후보에게 반대투표를 할 수 없으며, 모든 투표는 당을 지지해야 한다.

소련에서는 당원이 되는 것이 북한에서처럼 필수적이지 않았다.|사진=Mark Surman

 

북한은 융통성이 없다. 모든 어린이는 유아와 수감자들을 제외하고 조선 소년총연맹과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의 단원이어야 한다. 필자가 평양의 한 여성에게 소련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사회주의 국가의 국민이 당 관련 기관에 소속돼있지 않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북한의 엘리트는 전적으로 조선노동당원들로 구성돼 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은 자발적 선택으로 국가에 충성심을 선언하는 행동이었으나, 북한에서는 조선노동당원이 되는 것이 핵심적인 관료적 절차로 여겨지며 당원들은 일반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

 

군주제 대 과두제

소비에트 연방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 유리했던 중요한 이점 중 하나는, 소련은 군주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레닌은 자식이 없었고, 스탈린은 아들이 있었으나 레닌과 스탈린의 혁명적 동인을 물려받을 훌륭한 후계자는 아니었다. 그의 아들 바실리는 평범한 공군 중장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씨 왕조는 북한 내 권력 유지에 필수적이다|사진=InSapphoWeTrust

 

결과적으로 차기 군주는 전 지도자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을 필요가 없었다. 일례로,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제치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 소련 정치범 수는 스탈린 시대의 1%까지 급감했다.

김일성은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그의 정치 노선이 유지되도록 보장했다. 따라서, 경제적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사회·정치적으로 북한은 고(故) 김일성 시대 그대로다.

 

군사 문제

구소련군은 징병제를 시행했다. 육군 복무 기간은 2년, 해군은 3년이었다. 때로는 국가에서 복무 기간을 늘렸는데, 일부 불행한 이들은 6년이나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 비하면 구소련 시민들은 다행이었다. 북한의 의무 복무 기간은 10년이고, 1996~2003년 동안은 13년이었다. 2015년부터는 여성도 징병 대상인데, 복무 기간은 남성에 비해 짧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구소련 시민들보다 군대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부분의 소련 시민들은 징병을 피하려고 애썼으나, 북한 주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대를 반긴다.

첫째, 표준 이하의 출신 성분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군 복무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당원이 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다. 둘째, 북한에서 복무 경력이 없는 자는 일반적으로 군관학교 (사관학교)에 입학 할 수 없었으므로, 군관(장교)이 되려면 병사로 복무하는 것이 곧 군 생활의 첫 단계였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들에게는 직업 군인의 길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음식이 제공되고 막사에 살 것이므로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민반의 불시 시찰에 놀랄 일도 없이 편안하게 잘 수 있다. 복무가 끝나면 당원으로 인정되고, 하급 관리로 임관될 수도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은 조선인민군에 입대하고 병역을 피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북한과 소련 사이의 흥미로운 대조점들 중 일부일 뿐이다. 2편에서는 이데올로기, 국제 관계 그리고 인권에 관한 양국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들을 분석할 것이다.

 

번역: 김서연 기자 seoyeon.kim@nknews.org

영어 원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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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사진=’공산주의 박물관 – 프라하-13′, Mark Su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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