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보기관의 비밀 공작

북한 정보기관의 역사와 중앙집권화가 미친 영향

Andrei Lankov, 2017년 05월 03일

지난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북한 정보기관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 번 높아졌다. 북한은 작은 나라치고는 크고 영향력 있는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북한 정보요원들은 전통적인 스파이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수십년간 북한은 수많은 납치(주러시아 북한 대사 추방 사건), 항공기 폭격, 암살, 그리고 한국에 대한 게릴라 전술 및 정치 지도자 암살 시도(알려진 사건만 해도 대통령들을 대상으로 한 최소 세 건의 암살시도가 있었다) 등을 감행했다.

공식적인 활동 외에도 북한 정보 기관은 일상적인 첩보활동에도 깊게 연루되어 있다. 공작원 파견, 해외 도청, 타국 국내 문제 등 북한 정치 결정권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간첩 활동(첩보 활동)은 대중문화 속에서 매우 중요하고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간첩활동이 대규모, 고비용 관료제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 글에서 북한 정보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겠다.

간첩 활동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 시대부터 간첩 활동이 존재했으나, 중앙 정보기관은 비교적 현대에 탄생했다. 많은 나라들에서 정보기관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설립됐다. 오늘날 전략적 야심 또는 중대한 안보 문제가 있는 나라들에서는 ‘정보 기관’들은 여러 부처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은 16곳의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CIA(중앙정보국), DIA(국방정보국)그리고 NSA(국가안보국)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렇게 복잡한 정보기관을 구성할 여력은 없지만, 정보기관 단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현대 국가는 최소한 두 곳 이상의 독립된 정보기관을 운영하며보통 한 곳은 군대 산하에서 군사 전략을, 다른 곳은 정치 정보를 담당한다. 두 기관 모두 독립되어 있으며, 간혹 외교부의 부속 기관인 경우도 있다.

군사 및 정치적 첩보 활동은 서로 다른 기술들을 요하기 때문에 두 기관이 독립되어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분(二分) 구조를 구성한 가장 주된 이유는 최고결정권자가 중요한 안보 이슈에 대하여 한 곳 이상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정보기관은 한 가지 심상치 않은 중요한 특이점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이 패턴을 고수했다. 군사와 일반 정보기관을 독립적으로 분리하는 구조 이외에, 조선노동당 산하의정보기관을 추가로 운영한 것이다.

다른 많은 국가들과 달리, 북한의 노동당은 고유 정보기관을 운영한다.|사진=조선중앙통신

1940년대 후반부터 존재했던 구 제도 하에서는 2009년 대대적으로 개편되기 전까지 외교 정보 일반은 국가보위부의 부처에서 수집 및 가공되었다. 부서 명칭은 몇차례 개명되었으나, 2016년부터 ‘국가보위성’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에트 기원

정보기구는 외교 정보, 국가 통제, 방첩, 암호화 등 여러 업무를 담당한다. 국가보위성은 구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매우 유사하다. KGB처럼 정보 담당 부처들은 때로는 내정부에 속해있었다. 내정부는 정치적 통제 외에도 범죄, 인구 등록, 기타 경찰 업무 등을 관리하는 대규모 정부 기관이다. 국가보위성도 KGB와 같이 점차 독립된 기관으로 성장하다가 1973년에 완전히 독립했다.

2009년 이전 체제의 두 번째 정보기관은 정찰총국이다. 군사 정보를 다루며 주된 업무는 조선인민군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북한의 통신 정보력이 약하기로 악명 높기 때문에 인지 정보와 잠입에 상당히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위에 설명했듯이, 2009년 이전의 구조는 ‘당 스스로의 정보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거대한 관료체제 하에서 여러 부서들은 국가보위성이나 정찰총국으로부터 독립된 채 (일부는 심지어 더 영향력이 컸다) 은밀한 공작을 담당했다.

 

당의 정보력

이 독특한 기관들의 기원은 조선노동당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1949년 남북한 노동당이 공식 합병하면서 조선노동당은 이론적으로 전국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레닌주의(또는 스탈린주의) 집권당을, 남한에서는 이승만 체제에 무력 저항하는 게릴라 집단이나 지하 조직을 운영했다. 조선노동당의 공식 목표는 전국 혁명이었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 정부는 한국의 지하 좌파 조직을 폭넓게 지원했다.

한국 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북한 정보기관의 주 관심사였다.|사진=istolethetv

 

그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 중앙 관료의 특별한 부서가 필요했다. 비밀 공작을 계획하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주체/공산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한국 지하조직을 다루는 부서는 초기에 ‘연락부’로 불렸다. 주된 목적은 한국의 혁명가 집단, 공작원 그리고 활동가들과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연락부가 창설되었을 때, 조선노동당은 한국 내에서도 은밀하지만 주목할 만한 존재감을 가졌다. 그러나 1950년대 초 모든 지하 당 조직은 파괴되었고 게릴라 작전도 한국전쟁 이후 곧 중단됐다. 그 결과 1954~1955년즈음부터 연락부는 근본적으로 연락책이 다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주의적 기관의 잘 알려진 회복력 때문인지 연락부가 해체되지는 않았고, 목표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분단국가로서 ‘당 정보기관’을 유지할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혁명적 통일의 꿈은 천천히 소멸해 갔고, 한국의 내부 혁명 가능성에 대한 일부의 희망도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조선노동당 조직을 재건하거나 친북 급진 좌파를 지원할 당 내부 기구를 보유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종종 ‘3호 청사’로 통칭되는 연락부와 그 후속기구들(이 기구들은 수십년 동안 여러 행정 개편을 거쳤다)은 계속 유지되었다.

결국 관료주의를 연구한 역사가들의 예상대로 조선노동당 정보 관료제는 기존의 업무를 확장했다. 조선노동당의 자체 정보기관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면적으로 전세계의 정보를 다루는 소규모 본부를 설립했다. ’35국’으로 알려진 이 기관은 북한 정책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나라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조선인민군에도 정보 기관이 있다.|사진= John Pavelka

 

권력 분립

이론적으로 북한 3대 정보 기관의 담당 업무는 쉽게 구분된다. ‘당 정보국’은 한국 내 혁명을 촉발시키고 한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업무를 담당하고, ‘정찰총국’은 한국군의 탱크, 비행장 및 전쟁 계획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며, ‘국가보위성’은 북한에 중요한 한국 및 해외 여러 나라의 정치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세 기관의 임무는 자주 겹쳤다. 최고 관료들의 권력과 성향이 제도적 장치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후반 가장 유명했던 북한 정보원의 공작은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사건과 같은 해 말 동해안 여러 지역에 대한 북한 무장공비들의 침투였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이렇게 한국 내 불안정을 초래하고 혁명을 조장하려는 작전은 조선노동당 기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대담하고 인상깊었던 실패한 공작은 사실 군 정보기관에서 계획되고 집행되었다.

2009년에는 구식 시스템이 완전히 개편되었고 결과적으로 중앙 집권화된 새로운 정보 기관이 등장했다. 이 때부터 국가사무위원회에 직접 보고하는 정찰총국이 첩보작전을 지도했다. 새로운 정찰총국 체제는 군사 정보기구와 당 정보기구를 모두 흡수했다. 이전 정보 기관의 모든 부서가 새로운 기관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 집권화는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고 초기 시스템의 흔적이 잔재했다. 이전 세 기관 중 가장 권력이 약했던 국가보위성의 해외 정보기구는 합병을 거절하고 독립된 기관으로 남았다. 그러나 2017년 초 국가보위부장 김원홍이 숙청되었다고 알려진 이후 국가보위부의 실제적 ​​중요성과 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보도는 그럴듯하다. 스탈린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 해외정보부 및 정치 경찰의 수뇌는 항상 위험한 직업이었다. 이들은 보통 최고위 공작원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는 최고 지도자에 의해 자신이 만든 고문실과 감옥에서 죽어갔다.

2009년 북한의 정보기관은 당국의 지시를 받아 책임을 수행했다.|사진=expertinfantry

 

정보기관 6개 부서

오늘날까지도 조선노동당의 일부 기관은 전복 작전 및 은밀한 공작을 수행한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통일전선부는 대남 선전 문구를 배포하며, 전세계의 한인 집단을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한다. 중앙위원회는 또한 규모가 많이 축소된 연락부인 225국을 운영하고, 노동당은 소규모이긴 하나 여전히 자체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새로 수립된 정찰총국에 책임 및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정찰총국은 여러 부서로 나뉘지만, 흥미롭게도 네번째 부서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독자들도 알다시피, 한국어에서 숫자 ‘4’는 ‘죽을 사(死)’와 같은 발음이라 기피되는 숫자다. 북한 간첩들은 미신을 믿으므로, 공식적으로 ‘죽음의 부서’라고 불리는 곳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찰총국의 구조는 북한의 결정권자들이 정보기관으로부터 기대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 제1부는 전 당 정보국의 일부분으로 공작원을 훈련시키고 잠입을 위한 기술적 지원, 주로 잠수함 또는 반잠수함형 함선 등을 제공한다.
  • 제2부는 전 군사 정보국으로 적국, 특히 한국군과 주한민군의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는다.
  • 제3부는 통신 정보 즉, 컴퓨터 해킹과 관련한 정보를 담당한다.
  • 제5부는 위에 언급한 35국으로, 당 정보국 내에서 수립되었다. 현재는 해외 정치 정보, 특히 한국의 정보를 담당한다(이 부서에서 최근 김정남 쿠알라룸프르 암살 사건을 계획하고 시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제6부는 군사 접촉과 군사 정책을 담당한다(제2부서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지 않다).
  • 제7부는 병참 및 공급 문제를 다룬다.

2009년 이후 등장한 정보기관의 중앙집권적 구조가 이전 수십년간 지속했던 삼권분립 체제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 궁금할 것이다. 북한도 중앙집권화와 분권화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북한의 정보기관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는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북한 공작원이 먼 외국에서도 대담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번역: 김서연 seoyeon.kim@nknews.org

편집: 이희영 hee-young.lee@nknews.org

 

영어 원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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