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이 살아있었다면 북한을 개혁할 수 있었을까?

북한의 정치 구조에서 개혁가의 집권은 어려운 일

Christopher Green, 2017년 03월 02일

2주 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북한 정치 구조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북한의 정치 구조와 개인의 성격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김정남은 2월 13일 쿠알라 룸푸르에서 마카오로 돌아가려다 치명적 신경 작용제로 암살당했다. 그가 두 여성의 손에 소름 끼치게 죽은 사실은 다양하게 묘사됐고 수사관들은 이 사건의 배후에 조선노동당이 있다고 분석했다.

고인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들 중 하나는 김정남이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그것이 어리석은 행위가 아니며 당시 북한 엘리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변명했다). 두 번째는 김정남이 김 씨 왕조의 장자이자 오랜 기간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버릇없는 망나니로 자랐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1990년대 후반에 북한 기업가 모임에 참석하며 경제 개혁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김정남은 그의 아버지의 총애를 잃고 외국으로 추방당한 이후로 북한 지도부의 ‘곁가지’가 되었다.

해외 유학파로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리면서 여유롭게 살아온 김정남이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면, 지금의 북한은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입증되지 않은 증거들

마카오에 거주하면서 김정남을 종종 만났던 한 캐나다인은 “그가 북한 주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고 싶어 했던 것이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남의 또 다른 지인 안워(Anwar)는 “그토록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살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적어도 들리는 바에 의하면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가정할 때, 그에게 권력이 승계됐다면 괜찮은 일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한 기자는 “인권 탄압 사실을 밝히고 탈북자들과 교류를 해온 그가 집권했다면 북한은 지금과 상당히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제 사회와 교류하는 데 더 관대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재고의 여지가 있다. 만약 개인 성격의 영향력을 믿는다면 김정남이 “공항, 카지노, 위스키 바 그리고 카페를 전전하며 억만장자 등 술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고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유주의자적인 성향의 열렬한 독서광”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가 북한을 더욱 인도적인 길로 이끌었을 것이라고 추론해야 한다. 결국 이는 국가의 운명이 상속권과 의지의 힘만으로 좌우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상속권과 의지만으로 국가가 움직일 수 있는 증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물며 구체적으로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등소평은 1978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을 선도해 현재까지 지속되는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한 위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프랭크 디코터는 그의 저서 ‘문화혁명 1962~1976, 일부 인민의 역사’에서, 등소평이 권력을 잡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 초 인민해방군이 중국 사회 혁명의 피해자가 되자, 시민들이 활기에 가득 차 아래로부터의 탈집단화를 지방에서 달성했다고 기록했다.

기존의 사회적 활동들은 등소평이 이끈 농업개혁과 경제적 변혁의 토대를 마련했다. 다시 말해 등소평의 일은 그 자체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를 공식화하는 것이었다. 물론 쉽지 않지만 같은 일도 아니다. 최고의 카드 플레이어도 자신에게 익숙한 손으로만 게임을 하게 마련이다.

 

기존 체제 반대

그렇다면 김정남은 어떤 카드를 제시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과연 어떤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이끌었을 지의 문제다. 그의 이복동생에게 주어진 환경들과 크게 달랐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김정남은 김정은과 동일한 정치적 결함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즉, 해외 유학을 하느라 국내 정치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점 말이다. 김정은이 2012년 직면했듯 그도 참나무 판으로 된 책상 너머로 그를 지켜보는 60~70대인 김정일의 오랜 동창생들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이들은 당내 조직지도부 및 주요 부서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단 하나의 우선과제로 김정남을 대면했을 것이다. 변혁의 시기에 김정일 시대의 정치적 유산(유훈 정치)을 지키고, 그들과 그 가족들의 경제·정치적 지배력이 지속되도록 보장하는 목적이다.

또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 대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긴 것처럼 국제 사회가 김정남을 믿고 대북 제재를 철회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정치적 노하우가 거의 없이 과거 70년 동안 유지된 정치 구조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김정남도 별수 없이 다른 독재자들의 통치 방식을 따랐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만들고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정보 획득을 위한 자신만의 접근 경로를 확보하고 그의 지지자들에게 충성의 대가로 경제적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보상해주었을 것이다. 그의 통제를 넘어선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료들을 이직시키고 직책을 교체하며 잠재적 반대파들은 모두 잔인하게 제거해야 했을 것이다.

김정남이 집권했더라도 장성택은 처형됐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국가의 흐름이 장성택을 죽음으로 몰았을 것이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누가 북한의 통치자가 되었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 김서연 기자 seoyeon.kim@nknews.org

영어 원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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